나태를 즐긴다. 아무 일도 처리하지 않고 마음이 시키는 쾌락만을 따라간다. 결국에 중요한 것은 내 뇌의 만족이라는 일념으로.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잔다. 아무 걱정도 없이 죽어있는 것보다는 나태하게 숨쉬고 있다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뇌에 자극이 부족하면 술을 더 붓고, 담배를 태우고 시각적으로도 만족을 얻는다.
수염이 자라나고 몸은 말라가고 뇌는 굳어가고 피부는 망가져가고 눈에는 초점이 사라져가도 걱정은 없다. 결국에 죽어있는 것보다는 나을테니까.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이기도 해보고, 상처도 줘보고 나쁜 짓도 마음껏 즐겨보자. 형벌이 주어지더라도 내가 죽는 일은 없을테니까. 망가진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지어보이기도 하면 역시나 세상은 사는 게 훨씬 낫다 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가장 뒤틀린 마지막 생의 의지를 즐기자. 가끔은 주어질지도 불확실한 미래의 보상을 위해 열심히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는 남의 노력에 냉소를 지어보자. 아무리 큰 보상이라도 무뎌지기 마련이고, 당연해지기 마련이다. 지금의 행복을 희생하며 자신의 뇌에 끝없는 정신승리로 안도감을 주입하며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비웃어보자. 결국에는 정신승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가끔은 미래에 대한 위기감에 불안할 것이고, 망가지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며 걱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루틴에서 벗어나 다시 현재를 희생하며 미래에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보상을 좇는 것보다 술을 마시고 눕는 편이 언제나 빠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자. 뇌는 약물로 채워버리면 금방 속는 기관이니까, 뇌에 충실히 약물을 공급하고 귀찮은 일들은 돈으로 때우자. 당장 돈이 없어도 좋다 어차피 죽어버리는 것보다 낫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니 무엇을 하든 신경쓰일 일이 없다. 완벽히 행복한 상태다.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도 없고, 온전히 나는 나를 위해 충실히 살고 있는 아름다운 존재다.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이대로 죽음에 도달할 듯 싶다.
그러나, 마음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에는, 나는 분명히 사회의 편견도 남의 시선도 다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한없이 추해보이는 내가 있다. 나는 내 뇌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줬다고 생각했다. 생각하는 걸 힘들어하니까 생각을 멈춰줬고, 감정에 고통받길 싫어하니까 감정도 배제해버렸다. 귀찮은 일들이 생기니까 처리하지 않아서 뇌의 수고를 모두 덜어주었다. 그런데 문득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준, 그런 내가 추해보인다.
집안에 쌓아둔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오고, 대충 널어놓은 빨래가, 면도하지 않은 내 수염이 바닥에 널부러진 술병들이 지저분해 보인다. 푸석푸석해진 피부가 마음에 들지 않고, 거울 앞에 서니까 오랜시간동안 구부정하게 앉아왔던 자세때문에 몸 마저 비뚤어져버린 것 같다. 내가태웠던 수많은 담배꽁초들과 오랜 음주로 원할하지 않은 수면이 불편하다. 다 빠져 버린 근육 때문에 팔은 앙상하고, 그토록 익숙했던 수식들도 이제 외계어처럼 보일 뿐이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자기계발이란 여전히 환상이다. 얼마만큼 길어질지도 모르는 시간을 당장의 욕구들을 잊어가며, 무엇이 될지도 모르는 보상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해야한다. 그러나 막상 도달한다고 해도 금방 익숙해지고 적응하고 당연하게 여겨진다. 더 멋지고 건강한 몸으로, 더 좋은 능력으로, 더 말끔해 보이는 얼굴로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더 큰 희생을 요구하고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더 큰 희생을 요구하고, 더 고통스러우니 더 나쁜 것이라고 해보자.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이 마약은 당장 내 뇌가 만족스럽도록 가장 편안할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을 제공해줘도 다시 생각이 나더라. 마음이 마지막으로 닿는 곳에는 인간이 절대로 끊어낼 수 없는 자기계발이란 마약이 있을 것이고, 생의 의지를 끊어버리지 않는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찾게될 것이다. 그러니, 나태를 즐기고 편안함을 즐기고 행복을 즐기자. 편의와 안락을 주어도, 모든 고통에서 탈피시켜주어도 결국에는 스스로 고통에 발을 담구며 이 약을 위해 전념하는 것이 마지막 지향점이 될 것이다. 나태와 편안함과 행복이라는 일탈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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