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 없게 된 지 4년이 넘었다.
처음엔 무계획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두려워서 쉬기 시작했다. 사실 쉬는 거라는 표현은 뭐하지만, 회사에 다녔다. 그래도 컴퓨터를 배워놓았기에 개발자로 일하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처음엔 학사병특이 목표였고 그게 끝날 때까지 근무할 생각이었다. 군대란 건 어차피 해결해야 했으니까.
회사를 다니는 태도에는 문제가 많았다. 언제나 내가 몰두하고 있던 것은 자기계발이 아니었다. 게임을 많이 할 때는 저녁 8시에 퇴근하면, 새벽 6시까지 롤 티어 올리다가 잠을 4시간 정도 자고 다시 아침 11시에 출근했다. 내가 워낙 답장 같은 것도 잘 하지 않는 사람이고 한 없이 나태한 사람인데 그걸 고치지 못해서 가끔 트러블도 생겼다. 회사에 지각도 많이 했기 때문에 지적을 많이 들었다. 애도 아니고 혼낸다는 표현도 이상하고 그냥 지적을 해줄 뿐이었다. 그래도 날 존중해주는 것은 항상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고쳐지지 않았다 나에게 1순위는 언제나 엇나가 있었고, 고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롤 티어 열심히 올려서 다이아를 찍었다. 사실 이전부터 다이아 찍을 실력은 있다고 스스로 생각만하고 나는 시간이 부족해서 못찍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순간의 뿌듯함은 있었지만 금방 잊혀졌다.
이제 새벽에 롤할 재미도 사라졌는데 뭘하지. 한창 미친놈처럼 술마시러 다녔던 적도 있다. 그때 해봐야 23살 24살이었으니까 술값으로 하루에 몇십만원씩 과소비를 해도 그날 하루 즐거우면 걱정 없었다. 술마시고 새벽에 택시타고 다니고, 안경 잃어버리고, 잠에서 깨어났더니 지하철에서 핸드폰과 지갑이 다털려있고, 미국가서 사온 술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지하철 공중화장실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한 번은 시비가 붙기도 했다. 술을 잔뜩 마셔서 정신도 못차리는 상태였지만 눈에 광기를 보여주며 단어 한 마디 절지 않고 따박따박 말하니까 자기가 알아서 가더라. 안죽은 게 다행이다. 내가 이러고 살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고등학교친구들밖에 없을 것이다.
미친놈처럼 살아도 먹고는 살아지더라. 회사에 가면 업무는 했으니까. 이렇게 망나니처럼 살아도 먹고 살려고 공부한 건 아니었는데, 문득 두려움이 생겼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조사해서 적어낸 어릴 적 꿈이 생각났다. 난 과학자라고 적었다. 병특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물리학과 대학원에 갔다. 성적을 그렇게 못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론 연구실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교수님을 봐도, 연구실 구성원들을 봐도 그냥 경외심이 든다. 내가 저렇게 되어야지라기 보단 그 사람들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대학원에서의 1년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엇나가 있고 계획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학사 병특을 포기해도 전문연으로 그냥 대체하러 온 것일까. 이젠 잘 모르겠다.
부족하지 않게 자라왔다. 집에 돈은 없었어도 태권도 열심히 배웠고, 악기배우면 재밌다 생각했고 꽤잘했고, 내 취미생활 다 즐기면서 공부 해도 성적은 만족스러울만큼 고등학교때까지 잘 살아왔다. 전공이랑 관련은 없지만 해킹하고 싶어서 해킹배우니까 재밌었고 주변인들 도움으로 대회도 많이 나갔다. 개발 배우고 싶어서 컴공 전공도 많이 들었고, 회사가서 개발도 배우고 멍청한 코딩 안하면서 퀄리티 좋게 일했던 것 같다. 물리학자가 꿈이었으니까 궁금해서 대학원 와서 퀄리티 좋은 학생들과 교수한테 많이 배웠다. 찍먹하고 싶은 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봤는데 이젠 또 방향성이 없다.
전 회사 대표님이 나한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차피 뭘 해도 먹고는 살꺼다 그냥 손 가는 대로 끌리는거 찍먹하면서 삶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이룰 수 있는 건 없다.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이 그 시간동안 한 분야에서 계속 일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찍먹하는 삶을 살 건지, 전문가의 삶을 살 건지는 너의 선택이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한데 혼자 답답해서 2020년 2월 22일 내 생일날 친구들 다 불러놓고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모르겠다, 아직도.
내년이면 계획이 없게 된지 5년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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